넓은 의미의 마상무예의 일종인 마상기예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마상기예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격구와 마상재 두가지입니다.
격구는 타구 또는 포구라고도 합니다.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채를 이용해 공을 쳐서 상대의 골문에 넣는 경기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폴로 경기가 당나라를 거쳐 격구라 불리면서 고구려, 통일 신라에 전해졌으며 고려시대에는 크게 성행하여 궁중은 물론 저자거리에서도 즐겨 시행되었습니다. 무인들은 격구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할 수 있으며, 창과 검술도 능숙하게 된다며 이를 즐겼다고합니다.
조선시대에도 1425년에 무관의 습무(習武)로 재흥되어 전기까지는 무과의 시취과목이 되었으며, 정조때에 이십사반(二十四般)무예의 하나로 정해져 격구보(擊毬譜)가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었습니다. 또한《용비어천가》제 44장에는 격구에 관한 노래와 기록이 있고,《경국대전》병전 시취조의 격구 항목을 보면 자세한 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후 한동안 중단 됐다가 마사회가 95년부터 2년간 학술연구를 통해 복원해 명맥을 잇게 되었습니다.
격구는 "말을 타고 하는 하키"라고 할 수 있겟습니다. 또한 영국의 폴로경기와 흡사하게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폴로보다 훨씬 다양한 기술이 있습니다.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세계속에 우리의 말문화를 널리 보급할 수 있는 뛰어난 문화 유산입니다.
격구의 경기방법은 경기장에서 구문을 세우고 좌우편 선수들이 줄지어 서 있다가 한 사람이 달려가 공을 공중으로 쳐올리는 것로 시작됩니다. 구장 한복판에 공이 내던져 지면, 양편 선수들 제각기 말을 타고 달려나와 공을 서로 빼앗아 장시로 몰고 구문에 공을 넣게됩니다. 이때 공을 구문 밖으로 쳐낸 횟수가 많은 편이 이기게 됩니다.
격구의 주요 동작 | |
비이(比耳) | 귀견줌이라고도 함. 경기자가 출마표 아래에 처음 말을 내어 달리면서 장시를 말의 목 위에 가로 들어 말의 귀와 가지런히 하는 동작 |
할흉(割胸) | 비이를 한다음 장시를 말의 가슴에 가까이 대는 동작 |
방미(防尾) | 치니매기라고도 함. 할흉을 한뒤에 몸을 기울여 위를 향해 누운 자세로 장시를 말의 꼬리부분에 갖다 대는 동작 |
배지(排至) | 말을 달려 치구표(공)에 이르러 장시 안쪽으로 비스듬히 공을 끌어당겨 공중으로 높이 치는 동작 |
지피(持彼) | 도돌방울, 도령이라고도 함. 배지를 한다음 장시의 바깥쪽으로 공을 돌려 밀어던지는 동작 |
전령(轉鈴) | 구을방울이라고도함. 지피를 하고 이어서 비이를 하여 왼편으로 또 할흉을 하고 2번째 방미를 하고나서 다시 공 던진 곳에 이르러 공을 뜨는 동작 |
수양수(垂揚手) | 전령을 하고 공을 놓아 치기전에 먼저 2~3번 비이를 하고는 손을 놓아치되, 공을 장시에 담은채 손을 높이 쳐들고 막대시는 아래로 처뜨러서 흔들흔들하는 동작 |
횡방(橫防) | 엇막이라고도 함. 공을 치며 나가는 도중에 구문 가까이 이르러서 공이 무엇에 부딪쳐서 말의 왼쪽으로 빗나가면, 오른편 등자에서 발을 빼면서 몸을 굽혀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공을 쳐서 바로 잡아 계속 쳐서 공을 구문으러 내어보내는 동작 |
마상재(馬上才)는 달리는 말 위에서 부리는 각종 곡예를 말합니다. 마상무예의 출발점이 공격을 위한 기술이라면, 마상재는 수비를 위한 기술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생존을 위해 말 위에 눕고, 서고, 숨고, 움직이는 기상천외한 기술들을 부립니다.
고려 시대에 성행한 격구가 조선 시대에 와서 마상재로 변화하였거나, 고려시대에 있었던 희마(戱馬:말위에서 놀다)가 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상재는 임진왜란 이후 기록이 보입니다. 한때는 훈련도감 관장 아래 관무재(觀武才)에서 봄 ·가을로 마상재인을 선발하여 마군에 속하게 한 마상재군이 편성된 적도 있습니다. 마상재는 원래 무예로 발생하여 실전에도 활용되었는데,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에는 마상재의 재주로써 적을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고, 효종(孝宗) 때 북벌계획을 세워 무예를 권장할 때 마상재 기술을 가르친 일도 있습니다. 이 밖에는 실제 전쟁에 이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대개 구경거리, 재주부리기 곡마(曲馬)로서 행하였습니다. 인조(仁祖) 때 일본에서 사신이 와서 마상재인을 보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어 조선 통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는 마상재인 2명을 따라가게 하여 마상재 기술을 일본에 자랑하기도 하였다. 터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는 무예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록이 있다. 《학산록(學山錄)》이라는 일본의 기록을 보면 “조선국에는 마희(馬戱)라는 기예가 있는데 참으로 절묘하고도 기이한 재주이다. 와기(臥騎) ·도기(倒騎) ·전기(顚騎) 같은 기술은 말하자면 잡희산악(雜戱散樂) 중의 일종이다. 나는 박경행(朴敬行)이라는 제술관을 만나 글로서 대화하였는데, 그는 붓으로 써서 말하기를 ‘적진 속으로 달려들어가는 기술을 조선에서는 무예로 꼽는다. 봄 ·가을로 이 재주를 고시하여 그 우열을 가려 상을 내린다. 이와 같은 마상재인이 400∼500명 있는데, 이 기예가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유래는 이미 오래 된 것이다. 창검이 빽빽하고 깃발과 북소리 요란한 적진 속을, 이 기예로써 몸을 감추고 달려 들어가 적군의 깃발을 빼앗고 그 장수를 베어버리면 감히 대적하는 자가 없게 된다. 이런 무예는 중국에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기예는 절박한 싸움터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는 무예가 아니겠는가"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조(正祖) 때 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마상재 부분을 보면 “말 위에서 재주 부리는 것을 원기(猿騎)라고 한다. 이것이 마상재의 시초이다. 고려 때 성행하였던 격구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말 한 마리를 타기도 하고, 쌍마(雙馬)를 몰고 나가기도 합니다.
마상재인의 옷차림은 전립(戰笠)을 쓰고 더그레와 누런 베바지를 입으며, 가죽신을 신습니다.
마상재의 재주 종목 | |
주마입마상 (走馬立馬上) | 달리는 말 위에 서서 총쏘기 |
우우초초마 (右우超초馬) | 우칠보(右七步)라고도 하며, 말 오른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
좌촤초초마 (左좌超초馬) | 좌칠보(左七步)라고도 하며, 말 왼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
마상마도립 (馬上마倒立) | 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달리기 |
횡와횡양사 (橫臥횡佯死) | 말 잔등에 누워서 죽은 듯이 달리기 |
우등리장신 (右裏우藏身) | 속칭 우장니리(右障泥裏), 말 오른쪽에 엎드려 숨어서 달리기 |
좌등리장신 (左裏좌藏身) | 속칭 좌장니리(左障泥裏), 말 왼쪽에 엎드려 몸을 숨겨 달리기 |
종와침마미 (縱臥枕馬尾) | 말꼬리를 베고 자빠져서 달리기 등의 8종목이 있다 |